몇몇 사정 때문에 장모님을 집에 모신지 두어 달 됩니다. 당신이야 혼자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시지만, 연세가 85세나 되는 만큼 그렇게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지요. 노인복지에 관심이 있던 아내가 어찌되었든 잠시 동안이나마 그 분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우리 집에는 상노인 두 분과 예비노인 두 사람이 살게 되었군요. 재미삼아 네 사람의 나이를 합쳐보니, 무려 280살입니다. 평균하면 70살.....!?
경남 거창의 가북(加北)에 계시던 장모님은 본래 교장사모님이셨지만 틈틈이 농사를 짓던 분이라, 농사철에 집을 떠나 있는 것이 불안하기 그지없는 듯합니다. 무시로 옥수수, 콩, 깨 등등 밭에 심을 작물의 파종을 걱정합니다. 비가 오면 더하시더군요. 당연히 집 걱정도 되고 사위나 사돈과 함께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영 불편하신 것 같구요. 마침내 저희 집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래 편지를 써놓고 ‘가출’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일이 딸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편지가 제 손에까지 들어왔습니다.
편지를 보니 가슴이 절절합니다. 어른 봉양하는 일을 강조하신 것도 그렇지만, 이 편지를 쓰시던 마음을 헤아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옛 문투와 옛 글씨체도 선명합니다. 세로 쓰기도 드물거니와, 그 중 일부는 맞춤법이나 어법에 맞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일제 시대 때 태어나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자란 분이니.....
장모님이 몰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써 놓고 간 편지.
내용도 뭉클하지만, 조선 시대 말기의 편지 쓰는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흥미롭다.
그분의 집. 경남거창군 가북면 달밭.
항시 집의 옆마당에도 옥수수를 많이 심어 놓으신다.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 때의 풍경 을 못잊어하시기 때문이다. 만주에서 거창으로 이사온 뒤 뒤 제일 먹고싶은 것이 옥수수였다고 었다고 한다.
만주국을 연구하는 동아대 한석정 교수와 인터뷰하는 장모님. 2008년 10월 마산에서.
어릴 적에 만주로 이사한 뒤, 그곳에서 교사로 있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으니, 만주는 그분에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한교수는 만주국 시절에 대해 아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구술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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